최인호가 들려주는 환상과 잠언의 세계
우리들의 인생이란 한갓 풀 같은 것.
들에 핀 들꽃처럼 한번 피었다가도 스치는 바람결에 이미 사라져
그 서 있던 자리조차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꿈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최인호
청년작가 최인호의 소설 『이상한 사람들』이 25년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독자들을 찾아왔다. 25년은 바닷거북이 알을 깨고 나온 기원의 장소로 회귀하는 데 걸리는 시간. 『이상한 사람들』은 바닷거북처럼 느리고 아둔하게, 독자들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으며 그 시간을 건너왔다. 「포플러나무」의 경우 미국에 번역되어 소개되었을 뿐만 아니라, 2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낭독하였을 만큼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상한 사람들』은 마르케스의 환상성을 능가하는 시적(詩的)인 환상성으로 충만한 소설이다. 경전의 잠언과도 같은 언어들로 가득하다. 최인호는 25년 전 서른다섯 살의 나이에 장엄미사를 올리듯 한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이상한 사람들』을 써내려갔다고 고백한다.
‘이상한 사람들’은 내가 서른여섯 살에 쓴 작품이면서도 과연 그것이 내가 쓴 작품이었던가, 그 작품을 쓸 때에 나는 분명 존재하고 있었던가 하는 이상한 착시현상을 느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25년 만에 『이상한 사람들』을 읽으면서 내가 쓴 소설이었으면서도 신선한 감동을 느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내 자신이 1987년에 가톨릭에 귀의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6,7년 전 『이상한 사람들』을 쓸 때 이미 충분히 종교적 사유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상한 사람들』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자신만의 집을 갖는 것이 평생소원인 사람, 높이 더 높이 뛰어올라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려는 사람, 어느 날 갑자기 침묵해버린 사람.
그들은 아둔하고, 사회로부터 소외되었으며 사회에 부적응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행동과 삶은 자폐적이며 기형적이기까지 하다. 그들은 얼핏 모래나 티끌처럼 작아 보이지만, 자폐적이며 불구의 영혼을 가진 듯 보이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거인들이다. 침묵 속에서 내뱉는 그들의 말은 경전 속 잠언처럼, 바위와도 같이 무디어진 우리의 영혼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다.
『이상한 사람들』의 일러스트를 책임진 김무연은 촉망받는 신예 일러스트레이터. 언어로만 존재하던 이상한 사람들의 모습을 따뜻하게 살려냈다. 김무연의 그림은 한 권의 아름다운 동화(童畵) 속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이상한 사람들 1 ―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
“이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다.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그의 집 한 칸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다.
이 우주는 모두 그의 집이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언제나 사닥다리 위에 올라가서 잠이 들었다.
우리들은 그곳을 다락방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닥다리에 그가 산 우표 한 장을 붙였다.
그것은 그의 집을 유일하게 치장시켜주는 단 하나의 그림 액자였다.
액자에는 먼 나라의 여왕 초상화가 새겨져 있었다.
이상한 사람들 2 ― 포플러나무
그는 절뚝거리며 먼 길을 뛰었다.
그의 몸은 하늘 위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다시 지상에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영영 내려오지 않았다.
아주 오랜 후에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낡은 신발 한 짝이었다.
이상한 사람들 3 ― 침묵은 금이다
말을 끊는 동안 그는 어둠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꽃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며,
물과 다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말은 바람과 이야기하는 통로를 막는 차단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의 방언(方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