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 수록된 65편의 시들은 삶의 도정에서 길어 올린 낯설고도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그 이야기들이 마치 가공을 거치지 않아야 참맛을 내는 꼬막처럼 알맞게 증기에 쪄낸 날것의 싱싱함으로 고스란하다. 일단 손에 잡히면 통째로 끝까지 읽지 않고는 참아내지 못할 흥미진진함과 묘한 흡입력을 가진 시집이다. 권순진의 시는 다채롭다. 기존의 시 문법을 따른 고분고분한 시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시가 더 많다. 형식의 틀에 얽매임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꿈꾸는 세상은 정치가 헛된 구호로 부르짖는 세상과 다르지 않다. 시인은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 더 가지고 더 배우고 더 누리는 사람이 좀 더 겸손해지고 덜 가지고 덜 배우고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당당할 수 있어야 빈부의 격차는 줄고 세상은 덜 외로워진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굴복하지 않고도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믿는다, 권순진의 시와 그가 펼치고 있는 시운동은 그러한 세상을 갈망하며 타박타박 걸어가는 낙타걸음의 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