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 교수가 들려주는 동학사상과 실천의 진수
오는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대한민국 정부가 최초로 주관하는 기념일이다. 1894년 5월 11일 동학농민군이 황토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날을 기린 것이다. 125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 역사상 가장 험난한 시기에 태동하여 변혁의 강물로 줄기차게 이어져온 동학은 어떤 의미인가? 동서양의 역사에 두루 정통하며, 그간 독보적인 역사관으로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아온 백승종 교수가 동학의 현대적 의미를 새로이 해석한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를 펴냈다.
이 책의 주요한 특징으로는 동학의 본질을 ‘관계의 질적 전환’으로 설명하고, 동학농민운동의 목적을 ‘정의로운 공동체’의 건설로 해석하는 등,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계보학적 접근도 눈에 뜨인다. 18세기 『정감록(鄭鑑錄)』에서 비롯된 사건을 동학의 기원으로 끌어올리고, 그동안 동학과 배치된다고 알려진 성리학이나 불교에서 ‘인물성동이론’ ‘미륵하생신앙’과 같은 사상적 원류를 발견해냈다. 19세기 조선 사회에 대한 인식 또한 새롭다. 현대정치의 개념으로만 알려진 ‘사회적 합의’가 조선의 백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 역사에서 무시돼온 소농(小農)과 ‘평민지식인’의 역할을 재평가했다. 이 책은 동학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탐구하여, ‘미래의 동학’을 모색할 수 있는 단초를 독자들에게 제시할 것이다.
동학의 사상적 토대, 최제우와 최시형
동학의 실천적 주체, 전봉준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동학이라는 새로운 사상이 움트기 전,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문화적 흐름이 있었는가를 짚어보는 데서 시작한다. 제1강 「동학이 나오기까지. 모든 것이 『정감록』에서 비롯되었네」에서는 『정감록』이라는 정치 예언서를 통해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살펴본다. 저자 백승종은 조선시대에도 나름대로 사회 안정을 보장하는 일종의 합의가 존재했다고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사회·경제적 차이가 없지 않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차별이 비교적 적었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합의가 깨지고 부의 편중이 심해져 가난해진 양반은 생계를 위해 지식을 팔았다. 곧 ‘평민지식인’의 탄생이다. 이들은 요즘으로 치면 ‘비정규직 훈장’으로 연명했지만, 평민이라는 신분적 한계와 지역적 차별을 이겨내고자 비밀결사에 합류한다. 그렇게 싹튼 새로운 사상이 바로 동학이다. 동학의 현대적 의미는 바로 사회적 합의가 깨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당대의 사람들은 어떠한 사회상을 고민했는가를 찾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제2강 「사람이 하늘이다. 최제우와 최시형의 삶과 가르침」에서는 동학의 핵심 사상을 살핀다.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와 그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崔時亨, 1827~1898)의 사상을 ‘자주적 근대화’라고 요약한다. 여기서 말하는 근대화는 서구의 근대적 산업체계가 아니라, ‘관계의 질적 개선’으로 동학이 지향한 새로운 세상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는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으로 질곡이 이어졌다. 동학은 이런 사회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최제우와 최시형은 산술적 의미의 평등, 곧 동등한 자격과 권리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귀함을 일깨웠다고 할 수 있다. 인간사회의 ‘관계망’을 바탕으로 ‘포(包)’와 ‘접(接)’이라고 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냈다.
이 책의 탁월한 분석은 ‘융합적 창조’로서 동학사상을 분석했다는 점이다. 한 사상의 출현에는 내적으로는 계보학적 이유가 있었고, 외적 충격이 있기 마련이다. 그동안 동학과 배치된다고 생각되던 유교와 불교, 도교를 녹여낸 새로운 사상의 출현으로 동학을 정의한다. 또한 세계사적 흐름으로 볼 때 18~19세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엄청난 시련을 가져다준 서구의 침략이 있었다. 동학의 외연을 확대해, 서구의 도전에 대한 조선의 대응이라는 성격을 띤다는 면에서 동학의 의미를 새로이 찾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제3강 「갑오동학농민운동, 그 중심에 소농이 있다」에서는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을 이야기한다. 혁명이나 전쟁이 아니라 ‘운동’이라 불러야 함은 긴 역사적 흐름을 염두에 둔 행동으로서 오늘날의 시민운동과도 하나로 통한다고 분석한다. 『동학에서 미래를 배운다』는 자질구레한 사실을 나열하기보다 역사적 의미에 초점을 맞춰, 수많은 인물, 장소, 숫자를 과감히 생략하고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책이다. 청일전쟁 이후 고종이 벌인 무분별한 개방정책은 쿤 문제를 가져왔고, 동학농민이 추구한 새로운 경제공동체는 결국 전통적인 소농사회의 특징을 살린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학은 근본적으로 소농사회의 고유한 노동조직과 깊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철저한 평화주의자였던 최시형과 최전선에서 동학농민운동을 이끈 전봉준(全琫準, 1854~1895)의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저자 백승종은 최시형과 전봉준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서로 다른 노선을 취했음에 주목한다. 초반에 물리력이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곳곳에서 포와 접을 만들어온 최시형도 동학운동에 합류할 만큼, 이미 조선의 상황은 백성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19세기말 조선, 우리의 선조들이 동학으로 이루고자 한 꿈은 무엇인가?
21세기초 현재, 우리는 동학을 배움으로써 미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제4강 「우리에게 동학은 무엇인가? 동학의 현재적 의미」에서는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동학은 어떤 교훈을 주는가 살펴본다. 동학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상호관계에서 질적인 전환을 추구했다. 특히 ‘해원상생(解?相生)’, 곧 차별과 소외에서 비롯된 일체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동학의 지도자들은 가장 큰 문제로 서로가 서로를 원수로 여길 만큼 차별이 심했음에 주목했다. 사회적 긴장과 대립을 해소하고, 경제적 양극화 문제를 풀어야만 되었으며, 문화적 헤게모니가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여기서 진정한 근대화를 발견하고, 이 지점에서 동학은 현대사회와 만난다.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한계에 봉착한 경제성장과 신용경제에서 탈피하여, 어떻게 하면 ‘관계의 질적 전환’을 이뤄낼 수 있을까? 1894년 동학농민운동에서 농민들은 두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다. 하나는 포악한 정치의 잘못을 없애고 백성들을 구해낸다는 ‘제폭구민(除暴救民)’과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도와서 바로 세우고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이다. 동학에는 현재의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회 가치가 함의돼 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장차 우리가 만들어낼 새로운 ‘대항 이데올로기’, 곧 탈핵과 에너지 전환, 생태 전환, 녹색의 가치, 시민의 자유, 풀뿌리 민주주의 등 여러 개념이 섞인 위대한 사상은 과거의 동학에서 충분히 포착되며, 이는 곧 우리가 배워야 할 ‘미래의 동학’이라고 말이다.
본문 미리보기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 때 농민들은 두 가지 기치를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하나는 ‘제폭구민(除暴救民)’이었지요. 포악한 정치와 포악한 지배층의 잘못을 없애고[除暴], 그 위기로부터 백성들을 구해낸다[救民]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구호는 여러분이 익히 잘 아는 것인데요, ‘보국안민(輔國安民)’이라고 했죠.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운명을 도와서 바로 세우고[輔國] 백성들의 삶을 편안하게 한다[安民]는 거예요. 그것이 곧 지상천국이죠. 이상적인 세계입니다. 우리 역사의 특징은 이상세계를 죽은 다음에 혼자 찾아가는 곳으로 믿기보다 바로 우리가 사는 현세를 바꾸어서 최고의 복지사회로 만들고자 한 점이었어요. _109쪽에서
왜곡된 사회경제적 구조를 동학농민들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런 문제들을 외면한 채 제아무리 “당신이 하늘이요. 내가 하늘이요” 해봤자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가 없다는 점을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어요. 전봉준 등은 그들의 삶을 멋대로 옥죄었던 생존의 조건 자체를 뜯어고치기 위한 운동을 시작한 거였어요. 동학이란 것은 철두철미하게 행동적인 성격을 띠어요. 동학은 믿는다, 안 믿는다 식으로 말하지 않는답니다. 동학은 하면 하는 것이고, 안 하면 하지 않는 것이었어요. 동학은 실천이었던 것입니다. _162~163쪽에서
동학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상호관계에 질적인 전환을 추구했어요. 특히 인간 사회에 관하여 말하자면, ‘해원상생’을 추구했어요. 저는 이 개념이 무척 중요하다고 봐요. 차별과 소외에서 비롯된 일체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자는 것이었으니까요. 최제우를 비롯해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신종교의 지도자들은 우리 사회의 특징을 ‘결원(結怨)’ 곧 한과 원한을 쌓는 데서 찾았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용서하지 못할 원수가 되어갔다는 것입니다. 차별이 심했기 때문이에요.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독점현상이 지나치게 심하다는 진단이었지요. 공유와 공존보다는 독점과 착취가 지배적인 흐름이었어요. 소유와 지배, 강압이 사회의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냉철한 비판이었어요. _20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