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2

우리 산하에 인문학을 입히다 2

  • 자 :홍인희
  • 출판사 :교보문고
  • 출판년 :2022-01-01
  • 공급사 :(주)북큐브네트웍스 (2024-10-25)
  • 대출 0/5 예약 0 누적대출 0 추천 0
  • 지원단말기 :PC/스마트기기
  • 듣기기능(TTS)지원(모바일에서만 이용 가능)
  • 신고하기
  • 대출하기 미리보기 추천하기 찜하기

강릉 김씨의 소생들은 한결같이 자존심이 강해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했다. 또 불의에 맞서는 성격 탓인지, 제명을 다하지 못한 공통점을 갖고 있다. 허봉은 세 살 터울의 이복형 허성보다 11년이나 먼저 대과에 급제한 수재로 왕에게까지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강직한 성품이었다. 당시 병조판서로 있던 율곡 이이의 직무상 과실을 들어 탄핵했다가 귀양길에 오르는 등 질곡의 삶을 살며 황달과 폐병을 앓던 중 38세에 금강산에서 객사했다. 누이 난설헌은 사후 그녀의 시가 중국에 까지 알려져 천재 여류시인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가정사의 불운 등에 짓눌려 27세로 요절했다. 허균 자신도 유교사회의 정해진 틀을 거부하고, 적서 차별의 법도가 엄격하던 시절임에도 사회적 불만이 가득 찬 서얼들과 어울렸다. 그런가 하면 당시 사회에서 이단적 기행으로 비치는 불교와 천주교까지 신봉했다. 53-54



신숭겸의 본래 이름은 삼능산三能山으로 서민 출신이며 몸집이 장대하고 무용이 뛰어났다고 한다. 출생지는 《고려사열전》이 지금의 춘천을 일컫는 광해주,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전라도 곡성으로 각각 기록함으로써 혼선을 빚고 있다. 1805년 세워진 신도비에는 지금의 곡성 지역인 욕내군에서 출생해 광해주로 이주해온 듯하다고 적고 있다. 그가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된 유래도 흥미롭다.

어느 날 왕건이 부하들을 이끌고 황해도 평산 일대로 사냥을 나갔다. 때마침 가을 하늘 위로 기러기 한 떼가 날아가자 왕건은 부하들의 활솜씨를 시험하고자 “기러기를 맞춰볼 자가 없느냐”고 말을 꺼냈다. 이에 능산이 나서 “어떤 놈의 어느 쪽 날개를 맞추리까” 하고 묻는다. 왕건이 앞에서 세 번째 기러기의 오른쪽 날개를 지목하자 주저 없이 활시위를 당겨 명중시킨다. 그 기러기가 한동안 하늘을 빙빙 돌다 이내 땅으로 떨어지자 왕건은 감탄을 금치 못하고 기러기가 맴돌던 영역의 토지 300결을 하사하면서, 이를 기념해 그 땅을 궁위전弓位田, 그 고장을 궁위방弓位坊이라 이름 짓고는 황해도 평산을 능산의 본관으로 삼게 한다. 108-109



오히려 여성 중에도 유학자가 있었느냐고 반문할지 모를 일이다. 물론 당시는 ‘여자가 글을 많이 배우면 교만해지고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지 못하게 된다’는 논리로 여성들의 학문 활동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다. 양반가의 규수라 해도 8세 전후의 어린이용 수신서인 《소학》이나 여성의 수신 및 행동규범을 설명한 《여사서》 등 중국 교양서 몇 권을 접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당시 이러한 봉건적 분위기와 질서 속에서도 각별한 철학적 사유능력과 집요한 연구로 성리학에 대해 일가를 이루고 그 결과물까지 후세에 남긴 여인이 있으니, 바로 ‘여성 군자’라는 예찬까지 들었던 윤지당 임씨다. 161-162



조화벽은 양양지역 유지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나 개성 호수돈여학교 재학 중에 양양 독립만세 운동의 도화선 역할을 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녀의 애국적 행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3.1 만세운동 이후 유관순 열사의 유가족을 거두었고 종당에는 그 집안, 즉 흥양 유씨 가문의 맏며느리가 된다. 당시 유 열사가 투옥된 후 집안은 풍비박산 그 자체였다. 부모는 유 열사가 주도한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사건 현장에서 피살되었고, 오빠 유우석도 충남 공주 영명학교 만세시위를 이끌다가 투옥되었다. 살던 집마저 불타버려 갈 곳 없던 어린 두 남동생들은 당시 형과 누나가 수감되어 있던 공주형무소를 찾아 천안에서 무작정 올라와 떠돌고 있었다. 때 마침 학교를 졸업하고 영명여학교 교사로 부임한 조화벽이 사정을 전해 듣고는 이들을 보살피면서 유우석의 옥바라지도 자청했다. 출옥 후 유우석이 네 살 연상으로 평소 누이라 부르며 의지하던 조화벽에게 감사의 뜻과 함께 “결혼해주지 않으면 금강에 몸을 던져버리겠다”며 끈질기게 청혼한 끝에 급기야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었다. 213



당대 문장가였던 석북 신광수가 새 영월부사로 부임하게 되는데, 기생 신고식인 점고點考에서 군계일학이던 경춘이 그의 눈에 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관속들로부터 사또에게 수청 들 것을 강요당하지만 이 도령과 혼인을 약속한 사이임을 호소하며 거부한다. 날로 매질과 협박이 거세지자, 이를 견디지 못한 경춘은 결국 죽음을 택한다. 그녀가 자결한 장소는 낙화암이었다. 옛날 단종이 비명에 간 후 그를 모시던 시녀들이 투신했던 동강의 절벽에 오른 경춘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하는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몸을 날린다. 그날은 단종의 기일이자 그녀의 생일로, 열여섯 살이 된 날이었다.
지원단말기

PC : Window 7 OS 이상

스마트기기 : IOS 8.0 이상, Android 4.1 이상
  (play store 또는 app store를 통해 이용 가능)

전용단말기 : B-815, B-612만 지원 됩니다.
★찜 하기를 선택하면 ‘찜 한 도서’ 목록만 추려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