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가 이래 봬도 왕년에는 힘깨나 쓰는 선산부였슈. 시절 겁나게 좋았쥬. 요늠에서 막장 인생 하믄 볼장 다 본 걸로 치지만 당시만 해도 막장이라고 하면 검은 노다지를 캐는 곳이었으니깐. 보름마다 두툼한 노란빛 간쪼 봉투가 손에 잡히는데 그 돈을 다 얻다 썼는지 원. 보다시피 지금 남은 거라곤 그때 시커먼 먼지가 허파꽈리가 터지도록 켜켜이 들앉은 탓에 얻은 이 폐병하고 그리고 계집이 병둔 서방 남기고 밤봇짐 싸는 바람에 남은 저 불쌍한 여식이쥬 뭐.'
- 본문 '폐광쟁이 진씨'중에서
고난의 시대를 살아온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절실하고도 아름다운 문체로 생생히 그려낸 소설을 통해 일상의 각질을 깨고 존재의 본질, 삶의 진실과 대면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는 김소진 전집 중 장편소설. 소박하게 재현된 과거의 한 시절 속 하찮은 사람들의 사소하고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삶의 고유한 가치가 드러나고 있다.
장석조네 사람들은 김소진만이 쓸 수 있고, 또 쓸 수밖에 없었던 소설이다. 어떻게 보면 김소진이 미아리를 쓴 것이 아니라, 미아리가 그의 손을 빌려 그 스스로를 쓴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