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造花)와 먼지」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튀어 오르며 그것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라져버린 것인지, 자취를 감추어버린 것인지, 혹은 스러져버린 것인지, 그 표현 중의 어느 것에 대해서도 그는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그 중의 어느 것이거나 그 중의 어느 것도 아닐 거라는 막막함뿐.
「조화의 장미」와 「장미의 조화」, 그리고 「조화인 장미」와 「장미인 조화」. 그 어느 쪽으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 무엇인가를 내려다본다. 그러면서 그게 상황일거라는, 아마 그런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곧 이어, 그것이 여건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으리란 생각을 다시 한다. 빌어먹을 세상, 하고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자 비로소 귀가 열린다.
'갑자기 야, 이 새꺄, 그러더니 몽둥이가 날아오더라.'
'에이, 커피는 기본이겠지.'
'칵테일두 괜찮다니까 그러네.' '난 싫어. 너희들 시키는 거 보구 시킬게, 그래도 괜찮지?'
'그거 꼭 감기약 같애.'
'카카오!'
'여기, 칵테일 괜찮아요?'
사방에서 간단없이 밀려드는 소리를 들으며 그는 자신이 포위돼있다는 걸 다시 한번 자각한다. 구원에 대한 절실한 갈망처럼,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창틀로 향한다. 십자로가 아니라 안과 밖의 경계를 이루는 거기, 깊고 무거운 가능성의 실체처럼 작고 네모난 무선호출기가 올려져 있다. 전후좌우의 밀집된 포위망을 뚫고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을 내포한 그것은 그러나 지나치게 묵시적이고 함축적이다. 저 작고 앙증맞은 게 과연 나를 이 포위망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게 해줄까.
8시에서 11시 사이.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