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案; 사진, 길, 그리고 벽

公案; 사진, 길, 그리고 벽

  • 자 :장태일
  • 출판사 :eBook21.com
  • 출판년 :0000-00-00
  • 공급사 :(주)북토피아 (2006-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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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마지막 동기모임이었다. 우리들은 저물어가는 한 해를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는 표정들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쉽기는 커녕 차라리 지겨웠던 한 해였다. 늦봄부터 시작해 여름을 그대로 태워버린 지독했던 가뭄, 그리고 참으로 용서하기 힘들었던 잔혹한 범죄들, 세금 도둑놈들, 게다가 다리까지 무너져 버렸으니 우리들은 저마다 기억을 더듬어 그런 찌글찌글한 얘기거리를 끄집어내 우울한 대화를 나누었고 차츰 술기운에 침몰해 들어가고 있었다.



정말 지독하게 더웠던 지난 여름의 막바지쯤 되는 시기였다고 기억해. 종일토록 달궈진 도로와 콘크리트 건물들은 밤이 되어도 식을 줄을 몰랐지. 아마 미처 식을 겨를이 없었을 거야. 여명이란 없었던 계절이었어. 아침의 햇살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관통해 버릴 것 같은 뜨거운 열기, 그대로였으니까. 하긴 설명이 필요없겠군. 자, 한 잔들 하세. 지난 여름, 우리가 살아남은 것을 위해.



나는 지금 화장실에 간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고 이 자리를 떠나려고 해, 언제나처럼 말이야. 이 작별이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이지 작별인사는 참을 수 없으니까. 그렇게 묻지 말게. 나도 알 수가 없어. 어쩌면 정세도가 높은 사진 속에 가두어진 나의 삶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모르지. 내가 들여다본 그날 아침의 사진 속의 벽돌벽처럼 나의 삶은 어딘가로 창백하게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아닌가. 내 삶을 들여다보는 그 누군가의 시선이 자꾸만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기분이 들고 비참하게도, 어쩌면 그가 들여다보는 내 삶의 사진 속에 이미 내가 가야할 길은 끝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묻지 말게. 나, 화장실 좀 갈게.



우리들은 갑자기 궁금해졌다. 대체 그 사진 속의 벽돌벽과 길은 어디로 이어져 있기에 우리들중 가장 행복하다고 믿어왔던 그에게 불행을 맛보여준 것일까? 돌아서는 우리들의 머릿속에는 저마다의 길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이어져가고 있는가, 하는 시작도 끝도 아리송한 공안(公案) 하나씩이 들어앉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저마다 입으로는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그의 이야기에 한결같이 귀를 기울이고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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